탄소문화원

[주간조선 2266호] 2013.07.22
  1. 특집·르포

스페셜 리포트

 

[스페셜 리포트] ‘천의 얼굴’ 탄소의 신상명세서 (최준석 편집장)

[스페셜 리포트] 생명의 90% 멸종 페름기 대재앙 주범은 탄소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탄소를 위한 변명

생명이 존재하는 것도, 화려한 문명도, 바이오·나노 기술도, 탄소가 있어 가능했다

이덕환 (사)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서강대 교수  
    
탄소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빅뱅 우주는
그렇게 수소를 만들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수소는 별 속에서
또 그렇게 탄소와 산소를 만들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과거의 우주 공간에서
인제는 돌아와 지구에 자리 잡은
중용의 원소 탄소여
노오란 국화 꽃잎을 피우려고
탄소는 수소, 산소와 결합을 이루고
국화는 여름 내내 광합성을 했나 보다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
 
 
   
▲ 탄소의 구조
탄소는 아득한 옛날 거대한 별에서 일어난 핵융합으로 만들어져 우주 공간으로 흩어진 원소다. 우주 공간에서 탄소는 12번째로 흔한 원소다. 우리 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체중의 70%를 차지하는 물을 빼고 나면 탄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명의 원소다. 탄소에 대한 우리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은 탄소에서 검고 어두운 느낌을 떠올린다. 탄소(炭素·carbon)라는 이름도 유기물이 시꺼멓게 변한 석탄이나 숯에서 유래됐다. 널리 알려진 탄소 물질인 흑연과 석유도 짙은 검은색이다. 탄소는 뒤끝이 만만치 않은 원소이기도 하다. 석탄에서 나오는 콜타르도 그렇고,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매연도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는 탄소가 전(全) 지구적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탄소가 언제나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투명한 다이아몬드도 순수한 탄소로 만들어진 것이다. 생동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상록수의 푸르름도 탄소로 만들어진 엽록소(클로로필) 덕분이고, 형형색색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탄소 화합물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떠한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빛도 탄소가 있어야만 반짝이게 된다. 심지어 화려한 인류 문명도 탄소의 화학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줄 바이오기술(BT)과 나노기술(NT)도 탄소에서 시작됐다.
   
   밤하늘에 빛나는 오묘한 별빛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알퐁스 도데나 윤동주와 같은 시인들이 그런 별빛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시적 영감을 얻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별난 욕망과 재능을 가진 우리가 감동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한 이성적 노력도 중요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찬란한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인들이 그 시작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이 보았던 밤하늘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여개의 별들이 모두 함께 움직이면서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수많은 별이 서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한 수메르 사람들은 마치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하는 천구(天球)에 붙박이 항성(恒星)들이 장식용 전구처럼 붙어 있다고 믿었다.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의 전통과, 7일을 주기로 하는 서양 기독교 전통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된 고전적인 ‘천문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 ‘천체물리학’과 ‘우주론’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낸 우주의 모습은 고전적인 천문학에서 상상하던 우주와는 전혀 다르다. 별의 수부터 엄청나게 많아졌다. 수천 개가 아니라 700만경(萬京)개에 이르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별들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주의 크기도 커졌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태양까지는 빛의 속도로 7분30초면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관찰된 가장 멀리 있는 별은 빛의 속도로 132억년을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우주의 역사는 무려 138억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밤하늘에서 무심하게 빛나는 별빛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으로 뭉쳐지면서 방출되는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4개의 수소가 핵융합을 거쳐 헬륨이 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4개의 수소 원자핵이 동시에 충돌해서 융합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연히 어느 지하철 역에서 서로 약속도 하지 않은 4명의 친구가 동시에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항성에서 핵융합이 일어나는 경로는 두 가지가 알려져 있다. 첫째는 두 개의 수소 원자핵(양성자)이 충돌해서 만들어진 중수소의 원자핵들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또 한 번의 핵융합이 일어나는 ‘양성자연쇄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내부 온도가 낮은 작은 별에서 나오는 희미한 별빛이 이런 핵융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보다 큰 별에서 쏟아져 나오는 훨씬 더 강력한 별빛에는 탄소가 촉매의 역할을 해줘야만 한다. 탄소 원자핵이 4개의 양성자와 순차적으로 핵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질소와 산소를 거쳐 다시 탄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탄소가 불사조(不死鳥)와 같은 촉매로 작용하는 ‘탄소 순환과정’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별 내부의 온도가 1700만도 이상이 되어야만 한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의 약 0.8%는 탄소를 촉매로 진행된다. 지구상에 생명이 살아 숨쉬도록 해주는 태양빛에도 탄소의 기여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유별난 존재다. 두 발로 서서 걷고, 도구와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흉내 내지 못하는 유별난 또 하나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불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불을 처음 사용했던 유인원은 50만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화산 폭발이나 산불에서 얻은 불씨를 이용했을 것이다.
   
   불은 연료를 뜨겁게 가열해서 공기 중에 포함된 산소와 함께 ‘산화’시키는 화학적 변환 과정이다. 원칙적으로 산소와 결합할 수 있는 화학적 특성을 가진 원소라면 모두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연료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 50만년 동안 인류 문명이 크게 발전했지만 불을 피우기 위해 사용하는 연료는 여전히 탄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그만큼 유용했다는 뜻이다.
   
   인간이 처음 불을 피우기 위해 사용했던 연료는 말린 낙엽이나 장작이었다. 식물의 줄기를 구성하는 탄소가 포함된 ‘셀룰로스’라는 탄수화물에서 수분을 제거한 후에 연료로 사용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연료였을 것이다. 수분을 충분히 건조시킨 임산(林産)연료는 지금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임산연료를 구하기 어려운 건조 지역에서는 낙타, 코끼리, 소와 같은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연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임산연료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불을 피우기도 쉬운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임산연료만으로는 금속을 가공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열을 내기는 어렵다.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숯(charcoal)’이다. 큰 목재를 뜨겁게 가열한 후에 산소의 공급을 차단시키면 셀룰로스가 분해되어 산소와 수소가 모두 빠져나가고 남은 탄소가 뭉쳐진 검은 숯이 만들어진다. 물론 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재에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재에서 생산한 숯은 연기나 화염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장작이나 낙엽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은 연료가 된다. 특히 숯을 연소시키면 청동이나 철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화력을 얻을 수 있다.
   
   18세기 말에 낮은 생산성의 농경목축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의 막을 올려준 ‘산업혁명’도 사실은 새로운 연료의 출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땅속에서 채취한 ‘석탄(石炭)’이 새로운 연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석탄은 아득한 옛날 지표면이나 해저에 살던 식물이 지각 변동으로 땅속에 묻힌 후에 높은 압력과 지열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탄소만 덩어리로 남게 된 것이다. 석탄 덕분에 증기기관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얻게 되었다. 인류 사회의 생산성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유, 평등,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 이덕환 탄소문화원장이 탄소 원자 60개가 축구공처럼 연결된 물질인 풀러렌의 모형을 들고 있다. photo 이명원 조선일보 기자
석탄을 사용하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산악 지역의 탄광에서 채취한 석탄을 소비자들이 있는 지역까지 운반을 해야 했다. 더욱이 석탄을 연소시키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연소 장치가 필요했다. 석탄이 불완전연소되면서 만들어지는 맹독성의 일산화탄소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석탄 보일러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도 문제였지만 처리가 곤란한 콜타르도 심각한 문제였다. 다행히 19세기 말부터는 콜타르를 원료로 사용하는 새로운 염료와 제약 산업이 발전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탄소 연료가 등장했다. 석탄과 마찬가지로 땅속에서 채취한 ‘석유(石油)’가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탄화수소의 혼합물인 석유를 정제해서 휘발유나 경유(디젤)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산업이 등장했고, 석유제품을 이용하는 다양한 내연기관들이 개발되었다. 내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 비행기, 선박 덕분에 전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분자와 의약 등의 새로운 화학산업도 현대 문명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20세기 후반에는 가장 간단한 탄화수소인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의 활용도 크게 확산되었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고 산업활동이 증가하면서 연료의 ‘고갈’이 심각한 과제로 등장했다. 오랜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석유와 석탄을 너무 빠른 속도로 소비해버리면 결국 고갈의 위기에 이르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탄소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거나, 지속 가능하게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탄소 연료’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지구 전체의 기후에 심각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탄소를 줄이거나 포기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에너지의 활용은 인류 문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갈 위기에 놓인 탄소 연료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역시 ‘탄소의 과학’인 화학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탄소 찬가
   
   생명의 중심에 있는 중용의 원소 탄소여!
   
   서울대 화학부 김희준(66) 교수는 대한화학회가 주최한 2012년 탄소문화상 심포지엄에서 탄소에 대한 글과 시를 발표했다. 24쪽에 실린 김 교수의 시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패러디한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다섯 가지 원소는 수소·헬륨·산소·탄소·질소 순이다. 반응을 하지 않는 헬륨을 제외하면 수소·산소·탄소가 1·2·3위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유독 탄소는 최외곽에 들어 있는 4개의 전자를 사용해서 4개의 공유결합을 이룬다. 그래서 탄소는 생명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한 유기화합물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4개의 전자를 내주어도 또는 4개의 전자를 받아들여도 안정된 귀족기체같이 되는 탄소는 전자를 잘 내어주는 수소와, 전자를 잘 받아들이는 산소 사이에서 중용의 미덕을 발휘한다. 그래서 이산화탄소에서 산소와 결합하고 있던 탄소는 수소를 만나면 수소에 산소를 양보하고 자신은 환원되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 광합성에서 이 수소는 물에서 온다. 생명체는 호흡작용을 통해 탄수화물에 들어있는 탄소를 이산화탄소로 산화시키면서 에너지를 얻어 생명활동을 해나간다. 탄소는 에너지 순환이라는 점에서도 생명의 중심 원소인 것이다. 생명의 중심에는 수소, 산소, 그리고 탄소가 있는데 그중에 중심은 중용의 원소 탄소이다.

지구의 탄소는 어디에 얼마나 분포하나
   
   지구에 저장된 탄소의 양은 75페타톤(7.5×1016)이다. 대부분이 석회암, 백운암, 케로겐(셰일 속의 정화된 유기물), 석탄, 석유, 천연가스에 들어 있다. 이 수치는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탄소의 양이자 지구 탄생 이후 변하지 않은 양이다. 대기에 존재하는 탄소의 양은 약 900기가톤(9×1011)으로, 땅 위 식물에 저장된 양(약 600기가톤)보다 많다. 토양은 그 3배를 흡수한다. 대기 중 탄소는 지구 전체 탄소의 10만분의 1 정도다. 채굴 가능한 화석연료의 탄소는 5500기가톤에서 1만1000기가톤 정도라고 한다. 단기 순환을 하는 탄소는 대부분 바다에 들어 있다. 그 양은 대기 중 탄소의 50배인 4만2000기가톤에 이른다. 바다의 탄소는 주로 중층해와 심해에 존재한다.
   
   출처 : ‘탄소의 시대(The Carbon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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