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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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png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려내기 위해 탈(脫)탄소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온실가스를 쏟아내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탈탄소 주장이 탄소가 인류 문명을 오염시키는 악(惡)이라는 뜻으로 잘못 인식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에너지의 합리적·효율적 소비를 추구하는 진정한 저탄소 녹색성장은‘탄소의 과학’인 화학의 적극적 활용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에서 탄소의 가치와 역할도 인정해야 한다.


  급격한 기후변화, 식량생산 감소, 물 부족, 에너지와 자원 고갈, 생태 환경 파괴가 심각한 전(全)지구적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환경을 소홀히 여겼던 우리의 실수를 엉뚱하게 탄소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다. 우리의 문제가 탄소 때문에 발생한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탄소를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탄소는 생명의 근원이다. 만물의 기본적 질료(質料)가‘물’이라는 탈레스의 유물론은 탄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주장이었고, 생명이 물에서 탄생했다는 주장도 생명의 주변적 조건을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과학에서 생명의 근원은 당연히 탄소다. 유전정보가 담긴‘생명의 책’으로 확인된 DNA가 탄소의 화합물이고, 광합성과 호흡을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도 탄소로 만들어진 유기물에 의한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감정과 이성도 유기물에 의해 움직이는 뇌활동의 결과다. 생명 현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태양의 에너지도 탄소를 촉매로 하는 핵융합반응으로 생산된다.


  탄소는 문명의 핵심이기도 하다. 인간은 탄소 화합물의 연소에 의한‘불’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짐승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농경과 목축은 동식물이 가지고 있는 탄소 유기물의 합성 능력을 활용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문명의 시대 구분에 사용되는 청동과 철도 탄소로 구성된 식량과 소재가 전제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도 탄소 덩어리인 석탄으로 시작되었고, 20세기 인류 문명의 기반도 탄화수소의 혼합물인 석유였다. 고분자와 첨단나노 소재도 탄소 화합물이다. 우리 경제의 생산, 내수, 수출 모두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조선, 반도체, 자동차가 아니라 탄소의 산업인 정유·화학산업이다.


  결국 탄소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惡)이라는 인식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탄소를 그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선(善)으로 규정해야 한다. ‘탄소의 과학’인 화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 문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사정은 변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은 ‘탄소문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더욱이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탄소문화’의 창달을 막중한 시대적 당위라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에 대한 새로운 성찰도 필요하다.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융합의 현실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자연과학은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인문학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정해야 하고, 인문학도 공연한 반(反)과학적 자세를 버려야만 한다. 자연과학이 단순한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개방성, 민주성, 합리성을 강조하는 과학정신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자연법칙을 밝혀내는 심각한 노력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결국 에너지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진정한 융합을 뜻하는 탄소문화의 창달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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